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읍 전투 (문단 편집) === 위표의 투항과 배신 === 그런데 그런 위표에게 선택의 순간이 왔다. [[홍문연]](鴻門宴) 이후 파촉(巴蜀) 구석에 처박혀 있었던 [[고제(전한)|유방]](劉邦)이 복수를 위해 이를 갈며 [[한신]](韓信)과 함께 밀고 나왔던 것이다. 한군이 [[삼진]]을 평정하자 눈치를 보던 위표는 유방에게 항복하는 쪽을 택했다. 위나라 전체를 바침으로써 전투를 피했던 것이다. 한나라에서는 서위를 폐지하고, 옛 서위의 영토에 군현을 설치해 한나라의 영토로 편입했다. 이는 이전에 한나라에 항복한 새나라 · 적나라에서와 마찬가지였다. 당시 한군은 온갖 제후들이 달라붙어 장장 56만이라는 엄청난 대군이었던 만큼, 마찬가지로 대세를 좇아 유방에게 합류한 위표였지만, 이후 상황은 위표의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항우가 [[전영]](田榮)을 상대하기 위해 제나라로 떠나 팽성이 빈집이나 다름 없었던 것은 좋았지만, 이후 벌어진 [[팽성대전]]에서 한군은 [[항우]]의 3만 군대에게 역사적인 대패를 당하고 만 것이다. 이렇게 되자 거의 대부분 유방을 따랐던 제후들의 외교 정책 역시 요동치게 된다. 위표 역시 자신의 주특기 눈치보기를 발휘했고, 아무래도 항우가 다시 대세로 보이자 그쪽으로 붙을 결심을 하게 된다. 6월 경, 위표는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어머니의 병간호를 구실]]'''로 삼아 유방에게 잠깐 다녀오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하고는, 한군을 떠나 위나라에 돌아온 후에 '''[[배신|황하의 나루를 끊고, 정 반대로 초나라를 섬기게 된다.]]''' 유방은 이로 인해 완벽하게 뒤통수를 얻어 맞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